본관은 영순(永順). 자는 망이(望而), 호는 서암(西菴). 발해국왕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이며, 태유광(太有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태치생(太致生)이고, 아버지는 태효정(太孝貞)이다.
어려서부터 기재(奇才)가 남달랐으므로, 김양진(金楊震)이 그를 데려와 기르고 훈회(訓誨)하였다. 1513년(중종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정랑과 개령현감·경상도도사·사예·사도시첨정·전라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장령·남원부사·선산부사, 직강·사섬시정(司贍寺正)·집의 등을 지냈다. 1536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였다.
이 때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산 스승 김양진의 장례를 정성껏 보살폈다가 미움을 받아 성주목사로 좌천되어 재직중 51세로 죽었다. 담론을 잘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옥천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쇄언(瑣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