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릉은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통구 분지의 우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형 평면을 가진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이 능은 흙 담으로 쌓은 능원 내에 자리한다. 무덤의 동편으로 제대로 불리는 시설이 있고 동북편으로는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남쪽으로 딸린무덤[陪塚]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1913년 조사 시 출토된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명문이 있는 벽돌에 근거하여 태왕릉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966년 중국 측에서 우산묘구 제541호묘(JYM 0541)로 편호하였다. 이 능에서 동북쪽으로 300m 거리에 광개토왕비가 있다.
태왕릉은 잘 다듬은 돌로 축조한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서 현재 11단이 남아 있다. 잔존하는 무덤의 정상부는 한 변이 24m 정도의 평평한 면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매장주체부가 노출되어 있다. 매장주체부는 돌로 쌓은 돌방[石室]과 돌방 내에 맞배지붕 형태의 돌덧널[石槨]이 있고, 돌덧널 내에는 관대(棺臺)가 남북 방향으로 두 개 놓여 있으며, 주검은 나무널[木棺]에 안치되었을 것이다. 돌방은 한 변 길이 3.24m, 2.96m의 장방형에 가까운 방형이고, 서벽 중앙에 길이 5.4m, 폭 1.96m의 연도(羨道)가 있다.
분구 위에서는 기와와 연화문 와당, 벽돌이 출토되어서 분구 정상부에 목조 구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구조물이 왕릉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무덤의 남쪽으로 3m 거리에 돌널[石棺]형태의 딸린무덤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또한 중국에서는 무덤의 동쪽을 50∼68m 거리에 1.5m 높이로 쌓아 올린 석단 시설을 제대로 보고 있으나, 그 용도는 확실하지 않다. 무덤의 동북쪽 120m 지점에도 건물지가 있으며, 능원의 동쪽 담장과 9m 정도 간격이 있어 초소시설로 추정된다.
무덤에서는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Y자형으로 부조된 연화문 와당은 태왕릉형 와당이라고 할 만한 특징적인 것이다. 이외에도 금·금동·청동·철기와 토기 등 1,000여 종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동제 장막걸이 장식, 상 다리 등과 등자(鐙子), 행엽(杏葉), 띠 연결고리 장식 등의 마구와 “신묘년 호태왕O조령구십육(辛卯年 好太王O造鈴九十六)”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방울이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태왕릉은 그 거대한 규모와 명문 벽돌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고구려 왕릉으로 추정되었던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왕, 장수왕, 고국천왕 등이 비정돼 왔는데, 출토된 유물과 무덤구조로 미루어보아 태왕릉의 건립 연대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가 우세하여 많은 이들이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 최전성기 때의 대형 돌무지무덤으로서 국내성 시기 고구려 왕권의 크기와 지배력을 짐작케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