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태산현은 백제 때 대시산(大尸山)이었는데 663년(풍왕 3) 당나라 치하에서 대산(帶山)으로 개칭하여 고사주(古四州)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대산(大山)으로 고쳐 전주도독부(全州都督府) 관내 군으로, 정읍현·빈성현(斌城縣)·야서현(野西縣)을 관장하였다.
인의현(仁義縣)은 백제 때 빈굴양(賓窟壤)이었는데, 757년빈성으로 개칭하여 대산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940년(태조 23)인의로 바뀌었다. 두 현은 고려 시대에 고부군의 임내(任內)였으며 1354년(공민왕 3)대산군에 감무관(監務官)을 두어 태산(太山)으로 고치고, 인의현을 편입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09년(태종 9)인의현이 태산군에 병합되어 태인현으로 바뀌었고 현의 치소를 거산역(居山驛)으로 옮겼으며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임내였던 능(綾)·나향(羅鄕)과 대곡(大谷)·개문(開門)·도전(桃田) 부곡은 조선 초기에 직촌(直村)이 되었다. 이들은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어 전주부(全州府)에, 이듬해에는 전라북도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정읍군에 병합되어 태인면이 되었다.
또한 1995년에는 정읍군과 정읍시가 통합되어 정읍시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 지역이 동진강(東津江) 지류인 대각천(大角川)지역의 이평(梨坪)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평은 배들〔舟坪〕과 같은 음에서 나온 것으로 배들평야에 조수(潮水)가 들어와 배가 드나들 수 있다는 데서 나온 지명이다. 호남평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남창(南倉)·산창(山倉)·창삼(倉三) 등에 모아 서해로 보냈다.
당시에는 이곳이 부안·고부·정읍·김제·금구·임실·순창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하여 호남평야 지역의 교통 중심지였다. 또한 거산역이 있었다. 한편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었다. 고태산에는 잠실(蠶室)이 있었고 최치원(崔致遠)·정극인(丁克仁)을 모신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었다. 그리고 산외면 동곡(東谷)에는 전봉준(全琫準)이 살던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