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편찬하였다. 서거정의 본관은 대구,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1444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로 45년 동안 벼슬길에 있으면서 여섯 임금을 섬기고, 23번 전형(銓衡)을 담당하였을 만큼 관각 문인(館閣文人)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태평한화골계전』에는 순탄한 삶을 누렸던 그의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태평한화골계전』은 고려대학교본, 유인본(油印本), 순암본(順庵本), 일사본(一簑本), 정병욱본, 일본 덴리대학교 덴리도서관 이마니시문고본(今西文庫本) 등이 있다. 이 중 고려대학교본은 1482년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고려대학교본을 통해 『태평한화골계전』은 원래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앞의 한 책만 남아 있고 뒤의 책은 남아 있지 않다. 앞의 책 역시 뒷장 일부가 낙장되어 있지만, 대강의 서지사항은 확인할 수 있다. 표제는 ‘태평한화골계전’이고, 이어서 1477년에 서거정이 쓴 자서(自序), 양성지(梁誠之)가 쓴 「동국골계전서(東國滑稽傳序)」, 강희맹(姜希孟)이 쓴 「골계전서(滑稽傳敍)」등 총 3편의 서문이 실려 있다.
고려대학교본 1권에는 총 82편이 실렸다. 2권은 뒷부분이 낙장이어서 총 52편만이 확인된다. 낙질과 낙장된 점을 고려하고, 다른 이본들에 수록된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추론하면, 원래의 『태평한화골계전』에는 대략 270편 남짓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평한화골계전』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당시 사대부 사회의 조화롭고 여유로운 세계를 보여주지만 갈등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갈등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품 안에서 팽팽하게 전개되던 긴장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곧 작품 내부에서 보이던 무질서가 다시 조화로운 세계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서거정이 『태평한화골계전』에서 그리는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이는 여말 선초부터 이어진 문명 전환의 시대에 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일상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 점에서 보면 『태평한화골계전』은 역사 서술에서 일탈한 문학적 글쓰기이자, 문학적 글쓰기에서 일탈한 역사 서술이라 할 만하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은 문명 전환의 기운이 흥성하던 여말 선초 잡록을 수용하면서, 역사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를 뒤섞은 텍스트라 할 만하다. 『태평한화골계전』을 통해 역사를 보완하겠다는 당시 지식인의 책무가 반영된 결과였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일상에 주목하고, 당대를 사는 그들만의 자부심을 보여주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태평한화골계전』에서 잘 드러난다. 여말 선초에서부터 생성되기 시작한 잡록이 서거정에 와서 완성되는 양상의 일단을 보여준 결정체가 바로 『태평한화골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