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여왕 때 사용되었다. 이전까지는 634년(선덕여왕 3)부터 인평(仁平)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오다가, 647년에 진덕여왕이 즉위하여 7월에 태화로 개원(改元)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신라는 영토 확장을 위하여 고구려·백제와 싸우면서 이들의 배후인 당나라와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게 되자 650년(진덕여왕 4)에 처음으로 영휘(永徽)라는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겨우 4년 동안 사용되고 자연히 중단되었다. → 연호(年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