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 또는 額蓬縣)이었는데 고구려가 점령하였다가 뒤에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파평이라 고쳐 내소군(來蘇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장단현(長湍縣)에 속하게 하여 상서도성(尙書都省)의 관할로 하였다가 1063년(문종 17)에 개성부(開城府)의 직할지로 하였다.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두었고 1398년(태조 7)에 서원(瑞原)과 합병하여 원평군(原平郡)이 되었다. 1460년(세조 6) 왕비의 고향이어서 목(牧)으로 승격하고 파주목으로 개칭되었다.
파평은 파주본산(坡州本山)으로 불리는 파평산(坡平山)과 영평산(鈴平山)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임진강 하류에 있어 파주에서 적성(積城)ㆍ마전(麻田) 등을 잇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파평산에는 옛 성이 있었고, 고랑포(高浪浦)는 삭녕(朔寧)과 통하는 나루터였다. 지금의 파평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