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율방(律房)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 등 성악곡에 능통하였던 사람들을 가객(歌客)이라 불렀고, 가곡반주나 「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의 기악곡에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를 금객(琴客)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가객과 금객이 함께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곳을 풍류방이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인 출신들이 새로운 음악수용층으로 등장하였고, 이들이 풍류방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벌였는데, 정악이라는 새 갈래의 음악문화가 바로 그러한 중인 출신 음악애호가들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의 정악은 가곡·시조·가사 같은 성악곡 및 대풍류·줄풍류 같은 영산회상과 보허자·사관풍류·자진한잎·청성자진한잎 같은 기악곡으로 구분되는데, 그러한 성악곡과 기악곡 모두가 풍류방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음악문화의 실례들이다.
숙종 말 무렵 가객 김천택(金天澤)과 금객 김성기(金聖器)가 대표적인 풍류방의 풍류객이었고 이들의 작품이 『청구영언』·『해동가요』등의 노래책에 전한다. 양반 사대부 못지 않게 많은 지식을 지닌 중인 출신의 풍류객들은 그들이 연주하던 악곡들을 대개 거문고악보로 후세에 남겼는데, 이득윤(李得胤)의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1620), 신성(申晟)의 『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1680), 김성기의 『어은보(漁隱譜)』(1719), 작자 미상의 『한금신보(韓琴新譜)』·『졸장만록(拙庄漫錄)』·『신작금보(新作琴譜)』 등이 그 대표적인 실례들이다.
이런 풍류방의 전통 일부가 일제강점기에 하규일(河圭一) 같은 뛰어난 가객에 의하여 이왕직아악부에 전승되었고,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