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구을현(仇乙縣, 또는 屈遷縣)이었는데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고쳤다. 1005년(성종 14)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018년(현종 9)에는 방어사로 바뀌었다. 1397년(태조 6) 처음으로 진(鎭)을 설치하여 병마사로 하여금 지주사(知州事)를 겸하도록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풍천으로 바뀌어 군(郡)을 설치하였다가 은율현(殷栗縣)과 합하여 풍률군(豊栗郡)이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분리되었다. 1423년(세종 5)에는 병마사를 고쳐 첨절제사(僉節制使)라 하였다. 1469년(예종 1)에 도호부로 승격되어 풍천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풍천군으로 바뀌었다가 뒤에 송화군에 편입되었다.
북부와 동부에는 산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서부의 바다에는 초도(椒島)ㆍ석도(席島)ㆍ가도(駕島) 등의 섬들이 있었다. 고려 말에는 이곳에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있어 많은 피해를 보았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대동강 하류의 해안지대이므로 군사적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황해도 좌영(左營)을 설치해서 장연을 위시하여 7개 읍을 관할하였다.
해안의 초도진(椒島鎭)은 독진(獨鎭)으로 설치되었고, 허사포진(許沙浦鎭)은 대동강 하류에 설치하여 중국으로 밀항하는 자를 단속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이 밖에도 해안에는 12곳에 망루를 설치하였으며, 고리곶(古里串)ㆍ소산(所山) 봉수는 서해안을 연결하였다. 해변에는 해창(海倉)ㆍ둔창(屯倉) 등의 창고가 있어 이곳의 세곡을 모아 여기서 한강으로 운송하였다.
명승지로 초도춘운(椒島春雲)ㆍ업청추월(業淸秋月) 등의 풍천팔경은 관서 제일의 경승지로 알려졌다. 유적으로는 돌로 쌓은 읍성고지(邑城古址)와 벽돌과 흙을 섞어 쌓은 고행성(古行城)이 있었다. 이 지역의 토산품으로는 벼루돌〔硯石〕ㆍ마(麻)ㆍ자초(紫草)ㆍ청어(靑魚)ㆍ굴〔石花〕ㆍ낙지 등이 있다. 지금의 풍해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