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쪽은 동해, 서쪽은 함경남도 단천군, 북쪽은 길주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8°57′∼129°25′, 북위 40°28′∼40°58′에 위치하며, 면적 877.95㎢, 인구 5만 7793명(1944년 현재)이다. 5개 면 48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성진시 본동에 있다.
마천령산맥이 뻗어 내려 서부는 산악 지대이며, 중앙은 고원성이고, 동남부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동쪽은 설봉산(雪峰山, 658m)·능곡산(陵谷山, 491m), 서쪽은 덕만산(德滿山, 1,506m)·용연산(龍淵山, 1,598m), 북쪽은 소반덕산(小盤德山, 1,664m) 등의 험한 산지가 중첩되어 있으며, 마천령(摩天嶺, 873m)·와룡령(臥龍嶺, 1,090m) 등의 안부가 발달하고 있어 교통로로 이용된다.
하천은 마천령산맥을 분수령으로 동해로 유입되는데, 임명천(臨溟川)이 이 군의 북부를 동남류하며, 그 밖에 갈파천(葛波天)·쌍포천(雙浦川)·한천천(漢泉川)·남대천(南大川) 등이 성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천 하류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토양은 양토·사양토 등으로 이루어져 비옥하다. 해안선은 북부 해안은 비교적 단조로우나 남부 해안은 굴곡이 심하며, 곳곳에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고 있다. 성진만·임명만·일신만 등의 만입이 많으며, 양항을 이룬다.
지질은 서부는 시생대 결정편마암이, 동부는 화강암이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마천령산맥이 겨울의 북서 계절풍을 막아주며, 동해에 면하고 있어 같은 위도 상의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다. 연평균 기온 8.1℃, 1월 평균 기온 -5.8℃, 8월 평균 기온 22.1℃, 연 강수량 703.2㎜이다.
[고 대]
이 군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나 관내 학남면과 인접지인 성진시의 해안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인 기하학 무늬의 토기가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선사 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따르면, 부족 국가 시대에 이곳은 숙신(肅愼)·읍루(挹婁)·예맥(濊貊)·옥저(沃沮)·말갈(靺鞨)·부여(夫餘) 등 여러 고대 민족이 흥망성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668년(문무왕 8) 고구려가 망하고 그 땅이 당(唐)나라 군정하에 있을 무렵에는 한때 그 치하에 들어갔고, 699년(효소왕 8) 발해가 건국되었을 때는 오경(五京)의 하나인 동경용원부(東京龍原部) 관하에 있었다.
[고 려]
918년(태조 1)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초기의 영역은 과거 통일 신라의 영토로서 황해도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선에서 발해와 북계를 이루었다.
발해가 망하면서 이에서 벗어난 일부 말갈족 집단인 여진(女眞)은 금(金)나라를 세워 약 1세기에 걸쳐서 국운을 유지하다가 몽고에게 무너지자 백두산 동북의 만주에서 산재하였으나 그 일부 종족은 차츰 한반도로 남하하여 함흥 지방까지 세력을 뻗쳐 고려와 자주 충돌하였다.
명(明)나라가 새로 일어설 무렵 고려의 북진 정책이 실효를 거두어 공민왕 말엽에는 함경산맥 이동의 동해 쪽을 따라 두만강 하구 지방까지 수복하여 동북면(東北面, 朔方道)이라 불렀고, 1390년(공양왕 2) 비로소 길주만호부(吉州萬戶府)가 설치되었는데, 그때 학성은 이에 속하여 있었다.
[조 선]
1398년(태조 7) 동북면 도선무순찰사(都宣撫巡察使) 정도전(鄭道傳)이 북도 행정 구역을 분정할 당시에 이곳은 지금의 성진시와 더불어 길주목(吉州牧)의 성진사(城津社)였다.
임진왜란 때는 초전에 북진하는 왜군을 해정창(海汀倉)에서 만나 우리 관군이 분전하였으나 패하였다. 그 뒤 길주성에 웅거하는 왜적을 관북의병대가 임명평야에서 요격하여 북도에서 몰아내는 대첩을 거두어 설욕하였다. 후일 임명천변의 격전지에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세워졌다.
[근 대]
1898년길주군 서남방을 분리하여 성진군을 신설하였으나, 분군을 둘러싸고 분규가 일어나 6년 동안 두번이나 합군하였다가 1904년에야 완전하게 독립하였다.
1899년성진항이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배후지의 지하자원 개발과 각종 공장이 들어섬에 따라 1931년 성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계속적인 발전으로 1943년성진군의 학성면·학상면·학중면 등 일부 주변 지역을 병합하여 성진읍은 성진부로 승격되었고, 나머지 각 면은 폐합하여 학성군으로 독립시켰다.
이 군은 원래 농촌 지대였으나 근년에 이르러서는 두 곳에 온천장이 개발되었고, 흑연·금은광 등 지하자원의 개발이 활발하다. 이와 함께 동해안의 우수한 수산 기지는 큰 부원(富源)을 이루어 이 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44년 현재 5개 면 48개 동리에, 호구 수는 1만 1065호 5만 7793명이다.
학남면 예동과 학상면 옥천동에 봉수지가 남아 있다. 사찰로는 설봉산(또는 설운산)에 있는 복흥사(復興寺)를 비롯하여 서북 산지에 광적사(廣積寺)·운흥사(雲興寺)·오봉암(五峰庵) 등이 있다.
성지로는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이 여진 토벌 때 축성한 쌍계원(雙溪院)의 쌍천성(雙川城)이 있으며, 그 밖의 지역에 크거나 작은 성곽들이 산재하여 있다. 1960년 11월 학서면 덕인동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보이는 지석묘가 발굴되었다.
학중면 임명동에 있는 해정창(海汀倉)은 임진왜란 때의 고전지(古戰地)이다. 1592년(선조 25) 적장 가토(加藤淸正)는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 두 왕자를 생포하려고 여흥으로부터 정병 1만 명을 거느리고 북진하였다.
이에 함경도병마사 한극함(韓克諴)은 육진(六鎭)의 정규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마천령에 진을 쳤다가 같은 해 7월 16일 이곳으로 후퇴하여 적병들과 격전이 벌어졌다.
옛 명천서원(溟川書院) 남쪽에는 그때 퇴군하는 왜적을 관북의병대가 섬멸시킨 기념물로 1709년(숙종 35) 세워진 북관대첩비가 있었으나,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하여 탈취되어 현재는 초석만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길성현에 속하였으므로 이곳의 교육은 길주군의 향교에서 담당하였으며, 지방에는 서당이 설치되어 한문을 전수하였다.
그 뒤 1589년(선조 22) 현재의 학중면에 조헌(趙憲)이 명천서원을 설립하여 많은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근대 교육 기관으로는 1916년 임명공립보통학교가 처음 개교되었으며, 1923년 학남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지면서 1면 1개교의 교육 체재를 갖추게 되었다. 중등 교육 기관으로는 1927년 임명간이농업학교가 설립되어 농사 개량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45년 현재 군내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2개교, 간이농업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은 1945년 현재 불교 사찰 3개, 개신교 교회 5개소가 있다.
이 지방의 민요로는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역사나 지리적 환경 때문에 고전적인 것은 없으나, 다만 가사와 곡조가 애수에 찬 소박한 근대요가 유행한 것이 특색이다. 그중 「애원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술 취한 강산에 호걸이 춤추고/돈 없는 천지엔 영웅도 우노라/(후렴) 에 얼사 좋다 어널널 너리고 상사듸야/바다에 흰 돛 쌍쌍이 돌지만/외로운 사랑에 눈물만 겨워라/살살 바람에 달빛은 밝아도/그리는 마음은 어제가 오늘이라/삼천리강산 넓기는 하지만/너와 나와 갈 곳은 그 어디란 말가/설백월백 천지백하니/요내 간장은 어름판이로다/간다 간다 나는 돌아간다/간다 해도 아주를 갈까 정은 두고 간다/(후렴) 에헤야 에헤야 아무리 보아도 널과 나로다 에헤야 에헤야/강동 간 님은 돈이나 벌면 돌아오지만/북망산 간 님은 다시는 못 온다/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시오/동대산 바람은 이별 바람이라오/믿지를 마오 믿지를 마시오/동대산 간 낭군은 믿지를 마오.”
기록에 의하면, 이 지방의 민속놀이로는 사자놀음·석전·궁술놀이 등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세시풍속으로 씨름·그네·널뛰기·연날리기·쥐불놀이·윷놀이·달맞이·돈치기·돌차기 등이 성행되고 있다.
기후 관계로 명절 놀이의 옥외 행사는 단오가 으뜸이고 추석은 한산한 편이며 설날을 전후한 윷놀이는 옥내에서만 행하여진다. 윷놀이의 윷가락은 옛날에는 콩에 석 줄의 금을 새긴 것을 사용하였으나 근래에는 나무윷을 쓰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부녀자들은 달맞이 윷점이라 하여 정월 보름날 소반에 청아수를 떠놓고 한쪽 면을 깎아 흰 칠을 한 나무윷 4개와 당년수책이라는 점서를 갖춘 다음 연령 순으로 제단 앞에서 달을 향하여 절하고 세 번 윷을 던져 그 백면의 수로 책에 의하여 당년 운수를 가리며 길점이 나오면 한 마당 어울려 춤을 춘다.
동제로는 산신제(山神祭)가 있어, 마을에 맹수의 피해나 괴질의 유행 등 재해가 없도록 기원하는 치성을 드린다. 대개 정월이나 3월 초순의 길일을 택하여 정결한 곳에 임시로 모래를 깔고 제단을 마련하였으며, 제수로는 돼지머리·감주·시루떡·과일·백미·백포 등을 올리며 이밖에도 집집마다 메 한 그릇씩을 제단에 올린다.
제는 미리 선출된 제관 세 사람이 분향, 헌작, 배례하고 고축과 일동 배례 후에는 음복과 회식이 있으며, 제에 소요된 경비의 결산 보고가 있은 다음 제육을 꼬챙이에 꿰어 각 가정에 고루 나누어 준다.
임명천·남대천 하류에 형성된 비옥한 학성평야를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며, 산간 고원 지대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특히 임명천 연안은 관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쌀의 생산량이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감자·콩·조·보리·옥수수 등이다. 축산업으로는 소의 사육이 활발하며, 성진우(城津牛)·길주우(吉州牛)라 하여 널리 알려졌다.
연근해에는 좋은 어장이 형성되어 명태·대구·청어·방어·연어 등의 어획이 많으며, 한때는 정어리의 어획량이 세계 으뜸이었다.
광업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와룡·업억동의 인상흑연, 학상면의 갈탄, 학중면의 금·은·동 등이 생산되며, 그 밖에 운모·인회석·홍선대리석 등이 생산된다. 공업으로는 피혁·수산가공·정미업 등이 발달하였다.
한편, 시장으로는 정기 시장 3개소가 열리고 있는데, 학중면의 임명장, 학서면의 업억장, 학남면의 일신장 등이며, 주요 거래 품목으로는 가축·곡물·신탄 등이 있다.
임명장은 군의 상업 중심지로서 규모가 가장 크며, 업억장은 북부 지역의 중심지로서 산채·약초 등이 거래된다. 일신장은 남부 해안 지역의 수산 기지로 각종 수산물의 거래가 활발하며 그 밖에 생활용품이 거래된다.
교통은 성진시를 중심으로 철도와 도로망이 뻗어 있다. 함경선이 이 군의 해안선을 따라 통과하며, 용태·일신·농성·학중·업억 등 여러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 성진∼혜산진 간의 2등도로가 통과하여 편리한 편이다. 해상교통은 원산∼웅기 간을 연결하는 선박이 운항되며 성진항이 기항지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학중면 임명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고전지인 해정창, 학상면 송흥동의 송흥온천, 학서면 세천동의 세천온천 관북 지방의 군사·교통상 요지이며 경관이 뛰어난 마천령 등이 있다.
[학남면鶴南面]
군의 남부에 있는 면. 면적 226.67㎢, 인구 2만 2178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일신동이다. 본래 길주군 지역으로서 1904년 성진군에 속하였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이 군으로 개편되었으며, 구 학성면(鶴城面) 일부가 편입되었다.
서부는 마천령산맥의 여맥이 뻗어 내려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남동부는 비교적 평탄하다. 동부 해안 지대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며, 용대·일신·만춘 등의 항구가 발달하였다.
한천천이 면의 서북부를 동류하다가 성진시를 지나 동해로 유입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팥·조 등이 있으며, 근교 농업으로 배추·양배추·무·당근·우엉 등의 원예 작물이 재배된다.
연근해에서는 명태·고등어·방어·대구·가자미·꽁치·낙지 등의 어획이 많다. 광업은 은호동 일대에서 인상흑연이 생산되며, 그 밖에 금·은·동을 비롯하여 우아한 무늬로 유명한 홍선대리석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경선이 동해안을 따라 통과하며, 용대·일신·만춘 등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면의 북서부를 통과하며, 주요 지역에 등외도로가 발달하였고, 학상면·성진시·단천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예동에 봉수지가 있으며,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가 있다.
일신(日新)·송정(松亭)·풍호(豐湖)·이대(梨垈)·용대(龍臺)·금산(琴山)·예(禮)·은호(恩湖)·달리(達利)·만춘(晩春)·용소(龍沼) 등 11개 동이 있다.
[학동면鶴東面]
군의 동단에 있는 면. 면적 74.33㎢, 인구 9,208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흥동이다. 본래 길주군 지역으로서 1904년 성진군에 속하였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서쪽은 치수봉(峙燧峰, 165m)이 솟아 있으며, 그 밖에 대부분의 지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를 이룬다. 동부 해안 지대는 해안선이 비교적 단조로우며, 큰 어항의 발달은 미약하다. 길주군에서 흘러든 남대천이 면의 동북부를 남동류하다가 동해로 유입된다.
특히, 지형적으로 동북쪽 남대천과 서쪽 학중면 동부를 흐르는 임명천과의 사이에 위치하여, 남단이 뾰족한 삼각주의 형태를 이룬다. 하천 유역에는 토질이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관개 시설이 잘 이루어져 쌀의 생산량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팥·조·수수·옥수수·기장 등이 있으며, 근교 농업으로 배추·무·사과·배 등의 원예 작물과 과수 재배가 이루어진다. 연근해에서는 전업 또는 반농반어의 어로가 활발하며, 명태·고등어·방어·가자미·대구·낙지·꽁치 등의 어획이 많다.
교통은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면의 북서부를 통과하며, 방동을 중심으로 주요 지역에 등외도로가 발달하여 있고 학중면·길주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동흥(東興)·하천(荷川)·용포(龍浦)·용호(龍湖)·성하(城下)·성상(城上)·탑하(塔下)·한(閑)·방(防)·용암(龍巖)·용연(龍淵)·석호(石湖) 등 12개 동이 있다.
[학상면鶴上面]
군의 중부에 있는 면. 면적 196.21㎢, 인구 1만 2746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천동이다. 본래 길주군 지역으로서 1904년 성진군에 속하였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서부는 마천령산맥이 뻗어 내려 산악 지대를 이루어 서쪽은 함박덕산(咸朴德山, 1,359m), 북서쪽은 용연산 등의 험한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밖에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갈파천이 면의 북부를 동남류하며, 쌍포천이 면의 중앙을 동류하다가 모두 동해로 유입된다.
하천 하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팥·조·수수·옥수수 등이 있으며, 축산업으로 소의 사육이 활발하다.
광업은 학성탄광의 갈탄, 성진광산의 자철광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경선이 동해안을 통과하며, 이와 병행하여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통과한다.
주요 지역에 등외도로가 발달하였고, 학중면·학서면·성진시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옥천동에 봉수지가 있고, 주요 관광지로는 송흥동의 송흥온천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옥천(玉泉)·용천(龍泉)·호통(湖通)·호양(湖陽)·송흥(松興)·왕덕(王德)·수사(水使)·상평(上坪)·금천(錦川)·장현(將峴) 등 10개 동이 있다.
[학서면鶴西面]
군의 북부에 있는 면. 면적 321.02㎢, 인구 1만 1738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업억동이다. 본래 길주군 지역으로서 1904년 성진군에 속하였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서부는 마천령산맥이 뻗어 내려 산악 지대를 이루며, 동남부는 비교적 평탄하다. 동쪽은 능곡산·설봉산, 서쪽은 덕만산·와룡령, 북쪽은 소반덕산, 남서쪽은 용연산 등의 험한 산지가 솟아 있다. 임명천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다가 동해로 유입된다.
하천 하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조·수수·옥수수·기장 등이 있다. 광
업은 원평탄광의 갈탄, 신흥광산의 인상흑연, 이 면과 학상면 경계에 있는 성진광산의 자철광 등이 생산되며, 그 밖에 금운모(金雲母)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함경선이 면의 동부를 통과하며, 업억·원평 등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성진∼혜산진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주요 지역에 등외도로가 발달하여 있고, 학중면·학상면·단천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덕인동에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가 있고, 주요 관광지로는 세천동에 세천온천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업억(業億)·청학(靑鶴)·신흥(新興)·차삼(次三)·세천(細川)·덕인(德仁)·원평(院坪)·탑평(塔坪) 등 8개 동이 있다.
[학중면鶴中面]
군의 중동부에 있는 면. 면적 59.72㎢, 인구 8,925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임명동이다. 본래 길주군 지역으로서 1904년 성진군에 속하였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북서부는 구릉 지대를 이루며, 그 밖에 대부분의 지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를 이룬다. 남부 해안 지대는 해안선이 비교적 단조로우며 천혜의 좋은 어장인 임명만이 형성되어 있다.
임명천이 면의 중부를 남류하다가 동해로 유입되며, 하천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잡곡 등이 있으며, 근교 농업으로 배추·양배추·무·당근·파 등의 원예 작물이 재배된다. 연근해에서는 대구·명태·고등어·가자미·방어·꽁치·낙지·조개류 등의 어획이 많다.
교통은 함경선이 면의 서북부를 통과하며, 학중·농성 등의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원산∼회령 간의 1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임명동에서 성진∼혜산진 간의 2등도로가 분기하여 면의 중북부를 통과하고, 학상·학동·학서면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유물·유적으로는 임명동의 해정창 등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임명(臨溟)·수(水)·송상(松上)·춘(春)·농성(農城)·해평(海坪)·송하(松下) 등 7개 동이 있다.
1951년 2월김책군으로 개칭되었으며, 김책군은 1961년 12월 다시 종전의 성진시였던 김책시에 편입되고, 본래의 학상면 호통·상평·금천동, 학서면 업억·청학·세천·덕인·원평동, 학동면 동흥·용호·성상·석호동, 학중면 수·임명·춘동, 학남면 은호·달리동 등이 편입되었다.→김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