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32m.「건봉사사적기(乾鳳寺事蹟記)」와「건봉사말사사적기」등 여러 기록에 의하면, 한계사는 647년(진덕왕 1)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690년(신문왕 10)에 불탔다가 719년(성덕왕 18)에 다시 건립되는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한 뒤 1456년(세조 2)에 백담사(百潭寺)로 옮겨 지금처럼 절터만 남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절터에는 주춧돌을 비롯하여 받침돌, 파손된 석조불상, 석조광배 등이 남아 있고, 이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절터에서 북쪽으로 50m 쯤 떨어진 곳에는 인제 한계사지 북삼층석탑이 위치하고 있다. 이 석탑을 남삼층석탑이라고 부른 것은 북삼층석탑과 구분하여 남탑과 북탑으로 불렀기 때문이지, 가람 배치상 쌍탑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삼층석탑은 다른 곳에 옮겨졌다가 1985년에 옛 절터를 정비하면서 원래의 위치인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되었다.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바닥돌은 5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하였다. 아래층 받침돌은 하대석(下臺石)과 면석을 붙여 새긴 하나의 돌을 각 면마다 하나씩 모두 4장으로 조립하여 만들었는데, 각각의 면석에는 3구의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덮개돌은 2장의 널돌로 구성되었는데,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2단의 굄이 마련되어 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 역시 4장의 널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덮개돌 역시 아래층 덮개돌처럼 2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에는 2단의 각진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조각되었고,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만 약간 줄었을 뿐 높이는 비슷한 편이다. 지붕돌의 밑면 받침은 1층과 2층이 5단이지만 3층은 4단이다. 윗면인 낙수면은 평박(平薄)하고 네 귀퉁이의 전각(轉角)에 반전도 뚜렷하여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2단의 각진 굄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상륜부의 여러 석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갖추었다. 다만 3층 지붕돌의 밑면 받침 수가 1~2층에 비해 1단이 줄었기에, 조성 시기는 다소 늦어 보인다. 곧 각 세부의 모습을 보아, 건립 시기는 9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