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

목차
관련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한림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한림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 신간회 동경지회 책임자,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책임비서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한초길(韓初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때,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 신간회 동경지회 책임자,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책임비서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한초길(韓初吉). 함경남도 함흥 출신.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다. 외세다[早稻田]대학을 다녔다. 1923년 8월 동경(東京)에 유학 중 함경북도 출신 학생들의 동인구락부 강연회에서 ‘이상과 현실의 모순’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26년 10월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계급구성의 과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12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학우회 강연단의 일원으로서 함흥, 금산, 이리 등지에서 강연했다. 같은 해 조선공산당 일본부 선전부원 및 동경(東京) 동부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고,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초대 책임비서를 지냈다. 그해 신간회 동경지회 책임자가 되었다.

1928년 2월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책임비서 박낙종(朴洛鐘)이 검거되자, 김한경(金漢), 이우적(李友狄), 인정식(印貞植) 등과 일본총국의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3월 『대중신문』, 『현계단』 책임 편집위원이 되었고, 4월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책임비서가 되었다. 그해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0년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3년 9월 만기출옥했다.

참고문헌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엮음, 창작과 비평사, 1996)
『한국공산주의운동사』3(김준엽·김창순, 청계연구소, 1986)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纂委員會 編, 日外アソシエ○ツ, 1996)
『社會運動の狀況』(1929, 1934)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