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처음 외교문서 따위를 작성하는 사람을 상문사(詳文師)라 하였다가, 714년(성덕왕 13) 2월에 이를 통문박사(通文博士)로 개칭하였는데, 그 뒤 중국 당나라 한림원을 모방하여 한림대를 설치하였다.
771년(혜공왕 7)에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명문에는 ‘한림랑(翰林郎)’·‘한림대대조(翰林臺待詔)’·‘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등의 명칭이 보인다. 이 한림랑은 신라 말기에 이르러 한림학사로 개칭되는데, 다만 한림대는 그 자체 서서원(瑞書院)으로 개편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