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평(定平). 자는 성지(誠之), 호는 성암(誠庵). 한서(韓緖)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주로 명성이 높았다. 1742년(영조 18) 심육(沈錥)을 찾아가 『대학』을 비롯, 많은 경서(經書)를 배웠으며, 이때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강학에만 열중하였다.
스승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병을 하자 스승이 한사철의 정성에 대한 답표(答表)로 미리 마련해두었던 「심성도설(心性圖說)」 1편을 주며 치하하였다. 그 뒤 이극기(李克己)·한집(韓楫) 등과 함께 서사(書舍)를 지어 선사의 뜻을 이어받아 함께 강학을 일삼았다.
이수항(李壽沆)·이종성(李宗城) 등이 조정에 권거하여 안릉참봉(安陵參奉)을 제수받고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면서도 힘써 직책을 완수하였으며, 몇 번 사직하였다가 그 뒤 다시 봉사(奉事)를 거쳐 통정(通政)에 올랐다. 저서로는 『주서요의(朱書要義)』·『역학연의(易學演義)』·『홍범연의(洪範衍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