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수찬, 박천군수, 인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달(士達)
청련(靑蓮)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3년(중종 8)
사망 연도
1560년(명종 15)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검열|정자|수찬|박천군수|인천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수찬, 박천군수, 인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달(士達), 호는 청련(靑蓮). 한계희(韓繼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사신(韓士信)이고, 아버지는 도정 한석(韓碩)이며, 어머니는 윤지준(尹之峻)의 딸이다.

진사시를 거쳐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자·수찬 등을 지냈다. 1548년(명종 3) 이조좌랑이 되고, 춘추관기주관을 겸임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지평·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1553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 등 권신에 아부하여 탐학을 일삼았다는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1555년 복관되었다.

1557년 성천부사가 된 뒤 박천군수·인천부사 등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당대의 문학사(文學士)라 일컬어졌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견한잡록(遣閑雜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