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신. 종규(鍾奎)의 아들이다.
1932년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 1937년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成蹊高等學校) 2년을 수료하였다. 그 해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하였다.
1944년부터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였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악화로 관직을 사퇴하고 서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46년에는 함흥 학생데모사건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바도 있다. 그 뒤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1948년 월남, 유랑의 생활을 하였다.
그 뒤 자신의 투병 생활과 함께 1950년성혜원(成蹊園), 1952년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등을 설립, 운영하였고, 1953년 대한한센연맹위원회장으로 취임하여 나환자 구제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66년에는 한국사회복귀협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무하문화사(無何文化社)라는 출판사도 경영한 바 있다.
그의 창작 활동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문단 활동은, 1949년이병철(李秉哲)의 소개로 『신천지(新天地)』 4월호에 「전라도길」 외에 1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전개되었다. 같은 해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1955년에는 제2시집 『보리피리』를, 1956년에는 『한하운시전집』을 펴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시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유해는 경기도 김포군 장릉공원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저서 외에,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1957), 자작시해설집 『황톳길』(1960), 『정본(定本)한하운시집』(196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