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약 9㎞. 양근성(楊根城)·함왕산성(咸王山城)·함씨대왕성이라고도 부른다. 규모가 큰 포곡식(包谷式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성)의 성인데 석축의 성벽은 거의 무너졌다. 해발 1,031m의 봉우리에서 낮아진 봉우리와 사나사(舍那寺)가 있는 계곡을 포위하고 있다.
전설에는 성 밖 계곡 아래의 함공혈(咸公穴) 혹은 함왕굴(咸王窟)이라 부르는 바위굴에서 삼한 시대의 함씨대왕주악(周顎)이 태어나 성을 쌓고 웅거하였다가 멸망하였고, 그 자손들은 본관을 양근(楊根)으로 하였다 한다. 양근함씨인 고려 태조 때의 공신 함규(咸規)가 본향을 이곳으로 한 것과 관계된다.
고려 후기 몽고군의 침입 때 부근의 주민들이 이곳에 피난하였으나, 1253년(고종 40)에 포위공격을 당하자 방호별감(防護別監) 윤춘(尹椿)이 나와서 항복하였고, 또 1291년(충렬왕 17)에 합단(哈丹)에게 함락된 바 있는 사실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축성 방법은 자연할석으로 쌓아 삼국 시대 이래의 수법에 속하지만, 당시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고려 시대에는 양근성이라 기록되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