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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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사건
1892년(고종 29) 초에 함경도 함흥부에서 일어난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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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92년(고종 29) 초에 함경도 함흥부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이 난은 감사 이원일(李源逸)과 중군 유정(劉貞)의 불법장오(不法贓汚)로 인하여 발생하였는데, 전 정언 주욱환(朱昱煥)이 주동이 되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안핵사 이건창(李建昌)의 보고에 의하면, 주욱환은 조사(朝士)를 지휘하여 중군 유정을 축출하려 하였고, 시민을 사촉하여 시장의 상점을 철시하게 하였으며, 포정문(布政門)으로 곧장 나아가 감사를 능멸하고, 또 협잡꾼들을 제거하려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주욱환을 먼 섬으로 귀양보내고, 동시에 행동한 전 별제(別提) 이준언(李俊彦) 등 많은 관련자를 처벌하였다. 한편, 민란을 야기시킨 감사 이원일은 무주부로 귀양갔으나, 중군 유정은 71세의 노모가 생존하고 있어서 특사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
「고종조의 민란연구」(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14, 1980)
「동학란 기인에 관한 연구-사회적 배경과 삼정의 문란을 중심으로-」(한우근, 『한국문화연구총서』7, 1971)
집필자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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