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대병면과 용주면의 접경지이며, 인접한 악견산에 산성이 있으므로 통칭해서 주변분지를 ‘성리’라고도 부른다.
주위의 악견산 · 금성산 · 황매산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들 산에는 산성 · 봉수대 · 폐사지 등 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분포하며, 특히 금성산 북쪽 경사면과 창리 주변에는 가야시대의 창리고분군과 하금리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도 창리고분군에 연결된 유적으로 비록 봉토가 유실되고 유구내부가 도굴로 대부분 파손되었지만, 유구의 형태나 출토유물의 특징은 합천댐수몰지구내에 편입되어 얼마 전에 조사된 창리고분내용과 같다.
도굴되어 파괴된 흔적에 의하면 유구는 산돌로 4벽을 장방형으로 쌓아 올리고 장대석 4, 5장을 덮어 개석으로 삼은 수혈식석곽묘가 대부분이다. 또한, 지난 1966년 3월 이곳에서 출토되어 매장문화재(현, 매장유산)로 신고된 병 · 원저광구호(圓底廣口壺) · 유개고배(有蓋高杯) 등의 토기 특징도 앞에 말한 창리고분 출토품과 흡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 고분군은 인접한 창리고분군 · 하금리고분군은 물론 저포리고분군 · 봉계리고분군 · 반계리고분군 · 삼가고분군과도 서로 관계있다고 생각되며, 그 축조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경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