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기 신라의 왕경(王京)에는 방리제(坊里制)가 시행되었지만, 이와 별도로 민간에서는 여(閭)·항 등의 호칭이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 전성기 왕경에 있었던 35개의 금입택(金入宅) 가운데에 항질택(巷叱宅)의 명칭이 보이는 것이라든지, 혹은 삼랑사(三郎寺) 남쪽에 있었다고 하는 남항사(南巷寺)의 명칭 등은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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