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박내원의 후손 박재선(朴載善)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용직(李容稙)의 서문, 권말에 박재선의 발문이 있다.
4권 2책. 신연활자본. 국사편찬위원회,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정장(呈狀), 권2에 서(書)·서(序), 권3에 잡저·제문·묘표·행장, 권4에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묘갈명·묘지명·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모두 54수인데 그 가운데 7편은 만시이며, 나머지는 사우(師友)들에게 증여하거나 화답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칠언절구와 칠언율시가 많으며, 상당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정장은 의정부에 함경도의 능(陵)과 본궁(本宮)의 관제 개혁을 요청한 것 3편, 장례원(掌禮院)에 학교전(學校田)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1편이다.
서(書) 가운데에는 서정순(徐正淳)·이정로(李正魯)·김학진(金鶴鎭)·최익현(崔益鉉) 등 당시의 고관·명사들에게 보낸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서(序)에는 「군사양사계첩서(郡社養士契帖序)」·「경의재서(敬義齋序)」·「쌍산동문계서(雙山同門契序)」 등 계나 결사에 관계된 자료가 주목된다.
잡저 가운데에는 저자가 향교의 교수로 있을 때 관찰사 신기선(申箕善)의 명으로 각 면리의 유생들에게 교육과 시험에 대해 유시한 「유육사문(諭六社文)」이 음미할 만하다. 행장은 저자의 5대조 이하 선조들에 대한 가장(家狀)이 대부분으로 그의 선대 사적을 엿볼 수 있다. 부록에 실린 저자의 행장은 박봉한(朴鳳漢), 묘지명은 병조판서겸홍문관대학사 김학진, 묘갈명은 이용직, 묘표는 한회선(韓晦善)이 지었다.
19세기 함경도 지방의 사회상과 이곳 유림들의 의식, 유교 교육의 실태 등을 살피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특히 함경도 지방에 민폐가 컸던 본궁과 팔릉에 관한 내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