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금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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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청나라의 고증학자 유희해가 우리나라 금석문을 모아 편집하고, 유승한이 보유(補遺)하여 1922년에 간행한 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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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32년 청나라의 고증학자 유희해가 우리나라 금석문을 모아 편집하고, 유승한이 보유(補遺)하여 1922년에 간행한 서첩.
내용

본문 6권과 부록 2권, 합 8권. 유희해는 자제(自題)에서 수집한 탁본과 책 등 여러 가지 자료에 주(註)를 달아 설명하고, 이전에 자신이 천지의 금석문을 모아 만든 책이름이 금석원인데, 그 이름이 좋아 금석원이라 하고, 거기에 ‘해동’ 두 자를 별도로 붙였음을 적었다.

또, 유희해는 조선인 이혜길(李惠吉)·김정희(金正喜)·조인영(趙寅永)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 등을 밝힌 지(識)를 적었다. 이 책의 내용에는 매권마다 금석의 이름, 비의 높이·너비, 행수와 행별 자수, 서체(書體)·금석문, 금석과 금석문에 대한 고증, 해설과 평 등을 정연하게 적었다.

그러나 이것은 간행되지 못하였고, 더구나 1860년 청나라의 도문지변(都門之變)으로 유실되었다. 다행히 반문근(潘文勤)이 발미(跋尾)와 8권 중 4권을 전록(傳錄)하여 놓은 것이 있어, 그 당시 태수였던 포자년(鮑子年)이 발미를 간행하고, 그 뒤 1881년 태수 장송평(張松坪)이 4권을 간행하였다.

그 사이 서점에서 1권을 제외한 초고가 모두 발견되어, 유승한이 보유(補遺) 4권을 더하고 부록 2권을 합친 뒤, 나숙언(羅叔言)의 교정을 받아서 앞부분에 양유운태수치포자년서(楊幼雲太守致鮑子年書)와 포자년태수답서(鮑子年太守答書)를 추가로 게재, 1922년 전권이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완본에 실린 유승한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해동금석원』은 완본에 전서로 쓰여 있는 ‘중교(重校) 해동금석원고전보유 6권, 부록 2권’이라고 한, 곧 유승한의 완성본을 일컫는다. 이것은 장송평이 간행한 4권과 대조하여 보면 내용이 더욱 체계가 있는데, 유희해의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고, 청대의 피휘(避諱 : 숨김)를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그리고 목록만 실리고 내용이 빠졌던 신라 신문왕비, 신라백련사대자액, 지곡사진관선사비, 해인사화엄석경잔자 등의 제목을 삭제하고, 연대순이 잘못 되었거나 빠졌던 비음기를 첨가시켰다. 또한, 고구려 고성각석이 첨가되고 명문에 행이 바뀌는 것을 표시한 것 등이 다르며, 이전에 실린 고려삼천사대지국사잔비병비음과 현화사비병음기가 누실되기도 하였다.

유승한이 쓴 서문을 보면, 호태왕산릉각석과 같이 나중에 발견되어 유희해가 보지 못한 것들은 ‘보유’에 넣고, 유희해의 『해동금석원』에 있는 것들 중 가히 중교할 수 있는 것은 부록에 넣었다고 하였다.

또한, 편집에 있어서의 어려움, 즉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든지, 중국을 찾는 조선인 중에 학자는 없고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던 시대적 여건, 삼한강토(三韓疆土)가 구미의 제도를 채택하여 문인·박사들이 그곳으로 떠나버리는 것 등을 기술하였다.

또한, 당시 대학자 나숙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일일이 옮겨 적고 고증되는 것들을 6권으로 만들어 유희해의 『해동금석원』에 합병하고, 해동의 고각(古刻) 전후의 것을 추려서 부록에 합쳤다 하였고, 보유를 편집함에 있어 나숙언이 수년 동안 모은 것을 제공하여 준 것에 대한 기쁜 마음 등을 적었다.

이 ‘보유’·‘부록’·‘유희해 편’의 것들은 1919년에 간행된 『조선금석총람』과 비교할 때, 고려 이전의 것은 더 많고 명문도 파손이 적은 편이다. 또한, 가쓰시로(葛城末治)의 『조선금석고』는 이것을 그대로 초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금석명문의 보존과 함께 당시의 해설과 평을 함께 실어 사적인 가치가 막대함은 물론, 당시 금석학자들의 심혈을 기울인 노력과 안목을 대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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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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