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년(무왕 3) 당시 신라가 서쪽 국경 지역에 소타(小陀)·외석(畏石)·천산(泉山)·옹잠(甕岑)의 4성(城)을 축조하여, 방어 거점을 확보한 뒤 백제를 침공해 왔다. 이 때 좌평(佐平)인 해수는 왕명을 받고 보기(步騎) 4만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4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신라장군 건품(乾品)과 무은(武殷)이 군대를 이끌고 대적함에 따라 사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어, 군대를 천산 서쪽의 큰 못 가운데로 후퇴시킨 다음 복병(伏兵)하고 기다렸다. 그러자 신라장군 무은이 승세를 타고 갑졸(甲卒) 1,000명을 거느리고 큰 못으로 쫓아왔다. 이에 복병을 일으켜 급히 공격하니 무은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과 소장(小將)인 추항(箒項)이 함께 분전하여 장렬히 전사함에 따라 신라군을 크게 분발시켰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은 패하였고, 그도 겨우 목숨을 건져 단기(單騎)로 돌아왔다. 그가 지휘하였던 이 전투는 옛 가야 지역에 대한 지배권 장악을 둘러싸고 전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