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오현(五絃)·오현비파·직경비파(直頸琵琶)라고도 한다. 향비파도 악기분류법에 의하면 사부(絲部) 또는 현명악기(弦鳴樂器)에 든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이 현악기의 몸통은 물방울처럼 생겼고 곧은 목을 지니고 있으며, 다섯 줄로 구성되었다. 목 부분과 몸통에 12개의 괘(棵) 또는 주(柱)가 있는데, 연주자는 왼손가락으로 줄과 괘를 짚고서 거문고와 같이 오른손의 술대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낸다.
향비파는 향악연주 때 주로 사용되었고 네 줄로 된 당비파와 쌍벽을 이루는 현악기였으나, 오늘날에는 연주되지 않고 다만 전시 될 뿐이다.
향비파의 역사는 중국측 문헌과 한국측 문헌에 의해서 추적될 수 있는데, 향비파의 명칭은 《삼국사기》 악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나지만 오현이라는 이름은 중국측 문헌에 의해서 확인된다.
《북사 北史》 동이전이나 《수서 隋書》에 의하면 오현은 고구려 악기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며, 그 현악기는 구자비파(龜玆琵琶)로 불리기도 하였듯이 서역계 현악기였던 오현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이후에 통일신라에 전승되었기 때문에, 향비파라는 명칭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적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향비파의 악조로는 궁조(宮調)·칠현조(七賢調)·봉황조(鳳凰調)가 있었고 212곡의 향비파 악곡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향비파는 통일신라시대에 거문고·가얏고와 더불어 삼현(三絃)의 하나로 중요한 현악기였다고 하겠다.
향비파는 고려시대에도 중요한 향악기의 하나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향비파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전승되었다. 향비파의 그림은 《세종실록》 권132에 처음으로 보이고, 《악학궤범》에 자세히 그림을 넣어 풀이하고 있으며, 성종 당시 향비파음악에 낙시조(樂時調)·우조(羽調)·청풍체(淸風體)라는 세 가지 악조가 사용되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향비파의 몸통 앞부분은 오동나무로 만들었고 뒷부분은 밤나무로 제조되었으며, 괘와 장식품들은 거문고의 것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향비파는 악기의 구조상 당비파에 비교하여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다섯 줄로 된 점, 둘째 목이 곧은 점, 셋째 술대가 쓰인 점, 넷째 몸통에 대모(玳瑁)가 있는 점, 다섯째 12개의 괘가 모두 같은 길이로 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