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중원(重遠). 허손(許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침(許琛)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허굉(許硡)이며, 어머니는 김여석(金礪石)의 딸이다.
1536년(중종 31) 친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중종이 등극하기 전에 친구사이였으므로 특별히 총애를 받았다. 당시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이 많아 전조(銓曹)에서 일곱 번이나 감찰관에 추천하였으나, 모두 임명받지 못하였다.
그 뒤 정언에 추천될 때 중종이 즉시 임명하여 후대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뒤 수찬을 거쳐, 병조좌랑을 지냈다. 1537년 김안로(金安老)의 일당이 되어 옥사(獄事)를 함부로 일으키고 무고한 사림들을 죽이는 등 행패를 자행하던 정유삼흉(丁酉三兇)의 한 사람인 허항(許沆)의 죄에 연루되어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유배생활 속에서도 산수에 마음을 두고 노닐며 돌아올 줄을 몰랐다. 저서로는 『호산록(湖山錄)』 2권이 있으나 병화로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