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암(孔巖: 지금의 서울 양천구). 첨의중찬(僉議中贊) 허공(許珙)의 손자이며, 충렬왕대에 호부산랑(戶部散郎)으로 찬성사(贊成事)에 증직된 허관(許冠)의 아들이다.
1317년(충숙왕 4) 병과로 급제, 1344년(충목왕 즉위년) 판전민도감사(判田民都監事)가 되고, 이어서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라 이제현(李齊賢)과 더불어 서연(書筵)에서 시독하였으며, 같은 해 밀직사사로 승진하였다.
1347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곡(李穀)과 더불어 진사를 취하고 김인관(金仁琯) 등 33인을 급제시켰다. 1349년(충정왕 1) 찬성사가 되고, 1356년(공민왕 5) 중서시랑동평장사(中書侍郎同平章事)가 되어 양천군(陽川君)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