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9세기에 들어와 변경의 요충지에 군사력을 집중배치하여 이를 요새화하였는데, 844년(문성왕 6) 8월강화도에 둔 것이 혈구진이었다. 초대장관인 진두(鎭頭)에는 아찬(阿飡) 계홍(啓弘)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829년(흥덕왕 4)에 설치한 당성진(唐城鎭)이 본래 당은군(唐恩郡)을 개편한 것임을 고려한다면 혈구진 또한 종래의혈구군(穴口郡 : 경덕왕 때 海口郡으로 개칭)을 개편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 혈구진의 군사세력은 뒷날 고려태조의 세력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