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선(豪華船)은 상업주의 연극을 표방하였던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靑春座)와 자매격 극단으로, 역사극과 시대극을 표방하고 나선 제2의 전속극단 동극좌(東劇座)와 희극만을 전담했던 제3의 전속극단 희극좌(喜劇座)가 서로 비슷한 작품을 상연하고 대중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되면서 1936년 9월 29일에 이들을 통합, 재출범한 것이다.
이 극단은 동극좌의 변기종(卞基鍾)·송해천(宋海天)·하지만(河之滿) 등과 희극좌의 전경희(全景希)·석와불(石臥佛)·손일평(孫一平) 등이 중심이 되어 단원들을 정비, 보강하여 새 출발을 모색하였다.
극단 대표는 변기종이었고, 조직은 연출부, 문예부, 연기부 등으로 나뉘어졌다. 연출부는 홍해성(洪海星), 문예부는 최상덕(崔象德)·이서구(李瑞求)·박진(朴珍)·이운방(李雲芳) 외에도 김건(金健)·박신민(朴新民)·송영(宋影)·임선규(林仙圭)·김영수(金永壽) 등 많은 신인을 등용하였다. 연기부는 창립당시 서일성(徐一星)·박창환(朴昌煥)·장진(張陣)·박고송(朴孤松) 등이 주축이었으나, 이후 이 극단에 관계했던 배우는 수백 명에 달한다.
또한 호화선은 음악부를 새로운 부서로 신설하여 연극과 음악의 조화를 꾀하는 데 노력하였다. 무대기술에는 조명부에 김복선(金福善), 장치부에 김운선(金雲善)·정태성(鄭泰星)·원우전(元雨田) 등을 기용하였다. 그리하여 기존단체인 청춘좌와 함께 상업극의 대표적인 극단으로 발전하였다. 창립공연으로는 1936년 9월 29일, 동양극장에서 이운방 작「정의의 복수」, 정태성 각색「나의 청춘, 너의 청춘」, 그리고 문예부 제공의「호사다마(好事多魔)」등을 공연하였다.
주요 작품은 주로 홍해성이 연출한「국경의 밤」·「대지의 어머니」·「산송장」·「유랑 삼천리」·「친구충돌」·「낙화삼천」·「검사와 사형수」·「어머니의 힘」·「항우와 우미인」·「수허지(水許誌)」·「그 전날밤」·「홍루몽」·「망부석」·「눈물」등을 공연하였다. 그 중「눈물」은 1913년『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된 이상협(李相協)의 걸작 가정소설로 이미 혁신단(革新團)을 비롯한 많은 신파극단에서 각색, 상연되어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1930년대 후반에도 이러한 가정비극을 소재로 한 연극들이 당시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았음은 그 시대 극단과 관객들의 취향을 대변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941년 11월 호화선은 그 후신인 성군(星群)으로 개칭하여 8·15광복 이전까지 약 10여 년 동안「여자여 굿세여라」·「눈물」·「장한몽」·「애정보」·「청춘애사」등 많은 신파극들을 재각색하여 서울과 지방, 북만주까지도 무려 200백여 편 이상의 공연을 상연한, 우리나라 대중연극의 붐을 형성케 한 극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