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우국재(友菊齋). 홍징(洪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상부(洪尙溥)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 홍지(洪智)이며, 어머니는 고려왕족인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1435년(세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439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보임되고, 이후 승문원의 저작·박사를 역임하였다. 1443년 남부령(南部令)을 거쳐 교리·감찰 등을 지냈다.
1445년 금구현령으로 나갔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삼군진무 겸 승문원교리(三軍鎭撫兼承文院校理), 1452년(단종 즉위년) 경상도도사를 거쳐 1453년 형조정랑이 되어 악공(樂工) 독두이(禿豆伊)의 강도사건을 가벼이 다루었다고 추국되었으나 용서받았다.
1455년(세조 1) 성균관사예가 되고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수원부사로 나갔다가 1461년 장령·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72년 (성종 3) 첨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에 발탁되고, 1478년 “오랫동안 성균관에 거하였으나 성취한 바가 없다.”는 비난을 받고 사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인물이 출중하고 문학이 뛰어나 중용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왕씨의 외손이므로 용납되지 못하고, 한직(閑職)과 무직(武職) 만을 맡았다. 저서로는 『충음시고(蟲吟詩稿)』·『우국재집』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시·문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