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백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홍복원, 필현보의 난 당시의 모반인.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주요 관직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관련 사건
홍복원(洪福源)·필현보(畢賢甫)의 난
정의
고려후기 홍복원, 필현보의 난 당시의 모반인. 관리.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홍대순(洪大純)의 아들이며, 홍복원(洪福源)의 아우이고, 홍다구(洪茶丘)의 작은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33년(고종 20) 필현보(畢賢甫)·홍복원 등이 서경(西京)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켜 선유사(宣諭使) 대장군 정의(鄭毅)와 박녹전(朴祿全)을 죽이고 성을 빼앗아 배반하자, 최우(崔瑀)가 가병(家兵) 3,000명을 보내어 북계병마사 민희(閔曦)와 함께 쳐부수고 필현보를 요참(腰斬: 허리를 베어 죽이는 형벌)하였다.

그러나 홍복원은 몽골로 들어갔으므로 그 아버지 홍대순과 동생 홍백수가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뒤 몽골로 도망간 형 홍복원이 몽골군을 이끌고 고려를 자주 괴롭히자, 그 회유책의 일부로서 최우에 의하여 낭장이 되었다. 원종 때 복야(僕射), 1271년(원종 12)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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