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방(聖訪), 호는 일완(一阮). 충청북도 괴산 출생. 참판(參判) 홍승목(洪承穆)의 아들이다.
1888년(고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902년 내부주사(內部主事) · 혜민서참서(惠民署參書)를 역임하였고 1907년 전라북도 태인군수에 부임하였다.
당시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이 전국에서 봉기하여 치열한 항일전투를 전개하고 있던 때로서 적극적으로 의병 보호에 힘써 일본군의 체포망을 피하게 하였다.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주권이 강탈되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목매어 자결하였다. 홍범식이 장남 등 가족에게 남긴 유서 10여 통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요지는 “조선 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