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남양군 사범(南陽君師範)이다.
고려말에 대호군을 역임하고, 1399년(정종 1)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1400년(태종 즉위년) 12월 시위에 소홀한 일로 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면서 남성군(南城君)에 봉하여졌다.
1402년 전라도병마도절제사로 파견되어 왜구를 소탕하였으며, 1407년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전년의 사행시에 사물을 매매한 죄로 수원부에 안치되었으나 그 해 남성군에 복봉되었다. 1412년 개천도감제조(開川都監提調)가 되고 곧이어 남양군에 개봉(改封)되었다가 병으로 죽었다. 시호는 강양(康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