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25.1㎝, 너비 17.5㎝. 활판. 말미에 안동 김노동(金魯東)의 속기(續記)와 발문이 보인다.
이 문헌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할 무렵, 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 등이 상소문·격문을 통하여 민중을 분기시켰던 사실과, 또한 이들이 홍주의병을 꾀하다가 관찰사 이승우(李勝宇)의 배신으로 체포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체포된 김복한·이설·안병찬(安炳瓚)·이상린(李相麟)·홍건(洪楗)·송병직(宋秉稷)·임승주(林丞周) 등 7명을 홍주칠의사(洪州七義士)라 일컫는다. 뒤에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1905년 을사조약체결 때 다시 체포되었으며, 1906년 4월 26일에 홍주의병(총수 閔宗植)을 일으켜 항일의병을 벌였다.
홍양기사에는 이같은 사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어 특히 1906년의 홍주의병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전재수가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