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순준(淳俊). 경기도 연천 출신.
1924년 동경의 세이소쿠학교(正則學校)를 졸업하였다. 1927년에는 조중곤(趙重滾)·김두용(金斗鎔) 등과 문예동인지 『제3전선』을 발행하였으며, 동아일보·매일신보 기자 및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문단 활동은 1927년『개척(開拓)』 7월호에 평론 「문예시평(文藝時評)」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하여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문학의 사회적 성격」(1936.8.), 「노문학(露文學)과 콜옹(翁)의 지위」(1936.9.) 등을 발표하여 문학의 사회적·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1937년 1월 같은 잡지에 발표한 「문예평단의 회고와 전망」에서는 백철(白鐵)·김문집(金文輯)·최재서(崔載瑞)·김남천(金南天) 등을 비판한 반면, 임화(林和)·안함광(安含光)의 비평에 대해서는 긍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어 같은 잡지에 「조선문단과 신인군(新人群)」(1937.2.), 「문학의 생리」(1937.3.), 「문학·생활·진실」(1939.4.) 등을 계속 발표하여 1930년대에 비평가로서 공헌하였다.
1939년에는 이들을 묶어 평론집 『문학과 자유』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비평 활동은 광복 후에도 계속되어 『백민(白民)』에 「신시대의 문학」(1947.11.), 「순수문학의 비판」(1948.5.)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0년대 중반부터 역사소설을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 활약하였다. 1936년에 발표한 장편 「인조반정(仁祖反正)」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평 경향은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쪽으로 강하게 기울고 있으며, 광복 후에도 「애국사상과 애국문학」(현대문학, 1956.2.)을 통하여 애국주의문학론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민족적 사실주의」(문예, 1949.5.)에서는 사실주의문학론을 옹호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