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사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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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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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려 해안이 구례 화엄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내력을 수록하여 1697년에 간행한 사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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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승려 해안이 구례 화엄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내력을 수록하여 1697년에 간행한 사적기.
내용

1권 1책. 목판본·필사본 현존.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에 의해 화엄사 중창불사가 시작된 1630년에 화엄사의 영수(領袖) 승려가 해안에게 집필을 의뢰하였으며, 불사가 마무리된 1636년에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었다. 해안이 집필한 이 필사본『화엄사사적』은 1697년(숙종 23)성총(性聰)이 발문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1636년 필사본은 현전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 天理大學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은 1697년 간행본을 전사(傳寫)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론 부분은 화엄사의 창건설화와 중수기록으로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인도에서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창건, 그리고 자장(慈藏)의 중수사실 등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의상(義湘)이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게 된 유래와 도선(道詵)이 이곳에 총림대도량(叢林大道場)을 개설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의 중건 이후 네 차례의 대규모 중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진되었고, 그 뒤 인조 때 각성(覺性)의 중건 등 두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요컨대, 배불(排佛)의 와중에서도 화엄종을 대표하는 도량이었음을 중건·중수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다. 이어서 당우(堂宇)·유물·노주(露柱)·석탑·석경(石經) 등 화엄사의 여러 문화재에 관련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곳의 석경은 특히 주목받는 유물로서 일제 때 일부가 해체, 수리된 이후, 1961년 재정리된 바 있다.

화엄사의 보물로는 선조의 교지·어필·고종(古鐘) 등이 있다고 하였다. 산내암자로서 원소암(圓炤庵) 등 모두 14개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 창건연대와 규모 등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목판본은 1969년정만우(鄭曼宇)의 수정·보완에 의하여 활자본으로 유통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 8-화엄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해동호남도지리산대화엄사사적(海東湖南道 智異山大華嚴寺事蹟)」(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불교학보』6,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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