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1월 21일부터 1923년 3월 2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단행본은 1923년 8월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간행하였다. 당시 안석영(安夕影)의 삽화와 아울러 독자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나도향 작품은 처음에는 애상적 낭만적 경향에서 출발하여 곧 냉철한 리얼리즘의 경향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환희」는 ‘소녀적 감상주의’, ‘도취적 낭만주의’라는 초기의 작품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작품활동 기간이 6∼7년에 불과한 나도향의 경우, 문학의 변화하는 측면을 강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지속의 측면에서 「환희」는 그 애상적 자기도취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물레방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리얼리즘의 형식은 있었던 것이다.
「환희」 속에 있는 형식적인 리얼리티가 좀 더 원숙되고 세련된 것이 「물레방아」이다. 이것은 물론 리얼리즘 자체로서의 원숙이나 세련과는 다른 의미이다.
「환희」의 서두에는 단지 자기 작품에 대한 부끄러움과 외할머니를 향한 추모의 정이 언급되었을 뿐인 머리말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설의 일부를 이루는 소설의 구성요소가 아니고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순수한 작가의 말이라 할 수 있다.
죽어서 천당에 가기를 원하는 이상국은 함께 살아온 애첩과 첩 소생의 딸 혜숙을 분가시켜 살게 한다.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외아들 영철은 이복동생 혜숙과 동거하면서 친구 선용을 소개해준다.
가난한 선용은 일본에서 고학을 하지만 건실한 청년이었다. 혜숙은 부유하고 미남인 백우영과 사귀고 싶어 하지만, 오빠를 신뢰하는 까닭에 선용을 따르기로 하고 함께 사랑을 속삭인다. 선용이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들은 편지를 통하여 사랑을 이어간다.
어느 날 백우영의 초대를 받고 간 혜숙은 그만 처녀성을 잃고, 백우영의 아내가 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선용은 자살을 기도했다가 휴양을 하러 귀국한다. 그 때 결혼에 실망한 나머지 심한 폐결핵을 앓던 혜숙은 선용과 상봉한다. 그러나 선용은 현실에 대한 감상과 비애에 젖어 다시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정월로 이름을 바꾼 혜숙은 오빠와 함께 부여로 정양을 떠난다. 혜숙은 거기서 오빠의 애인인 설화를 죽게 한 죄책감과 오빠 친구 선용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감하며 백마강에 투신하게 된다.
「환희」의 작품구조는 신여성 이혜숙과 기생인 설화를 축으로 한두 개의 애정의 삼각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김선용-이혜숙-백우영의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축의 얽힘이 작품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설정이다.
「환희」는 인물들의 애정의 갈등양상을 근간으로 해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구조를 가진다. 문장의 산만함과 치기가 흠이긴 하지만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죽음의 미의식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는 「환희」에서 이상국이라는 인물을 제시하여 당시 사회의 축첩과 미신적 종교관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드러내준다. 따라서 나도향은 낭만적인 애정문제와 현실비판적 작가의식을 병립시키려고 의도한 작가로 평가되며, 이러한 의도는 나도향의 이후 작품에서도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