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830m. 해발 264m의 산봉에서 남향한 비탈을 긴 마름모꼴로 에워싼 사모형(紗帽形)의 옛 성이다. 황성(黃城)·북산성(北山城)·성황산석성(城隍山石城)이라고도 기록되었다.
문터가 사방에 있는데 남문 쪽이 가장 낮으며, 문의 안쪽에 우물과 건물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은 내탁(內托 : 속을 단단히 다지고 겉을 쌓는 일)이 많으나 기본적으로 내외협축(內外夾築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것)의 형식을 보여준다.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으나 북서쪽으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노성산성(魯城山城)이 산봉으로 가로막혔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문터에서 300m쯤 북쪽 산봉우리에 작은 보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
성 안에서는 백제토기편이 많이 발견되고, 또 ‘大安元年(대안원년)’·‘黃山寅方(황산인방)’으로 판독되는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이 곳이 백제 5방의 하나인 동방 득안성(得安城)에 관계된 곳임과, 고려시대까지도 계속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쪽과 서남쪽으로 주변 가까이 산성들이 있고, 특히 동남쪽의 평야지대는 백제멸망 당시 큰 전투가 벌어졌던 황산벌판이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