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진구는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로서, 황산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황산강상류가 되는 양산 서쪽 40리에 있다고 한 가야진(伽倻津)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는 가야연맹체의 동쪽 국경인 황산강을 장악하여 가야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 한편, 황산강을 봉쇄하여 상류와 하류를 잇는 가야연맹체의 수운교통을 차단시키고, 또 해상으로는 가야세력이 일본열도로 진출하는 것 및 일본과 교섭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기 77년 8월신라의 아찬(阿飡) 길문(吉門)이 거느린 신라군이 황산진구에서 가야병과 싸워 1,000여 명을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길문은 이 공으로 파진찬(波珍飡)으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