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수로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고려왕조의 몰락으로 인하여 봉모(奉母)를 핑계로 현실을 도피하여 선산(善山)에서 은거하였는데, 조선 정종 2년(1400)에 조정에서 태상박사(太常博士)의 직을 주었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이 작품은 고려왕조를 회고하며 지은 것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五百年(오백년) 都邑地(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도라드니/山川(산천)은 依舊(의구)ᄒᆞ되 人傑(인걸)은 간듸업다/어즈버 太平烟月(태평연월)이 ᄭᅮᆷ이런가 ᄒᆞ노라.”
이 시조는 원천석(元天錫)의 시조 ‘흥망이 유슈ᄒᆞ니······’와 함께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고려의 도읍지를 돌아보며 느끼는 과거에 대한 회상(回想)·비탄(悲嘆)의 감정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런데 원천석은 목동들의 피리소리라는 애상적인 가락을 통해 현실에서 느끼는 비감함을 그렸고, 길재(吉再)는 은성(殷盛)했던 과거에의 회고와 무상감으로 이입되는 사상을 통해 흥망성쇠의 무상함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