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수로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고려 말엽 정치의 어지러움을 보고 원주 치악산에 은거하였는데, 군적(軍籍)에 등록되므로 부득이 과거에 나아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다시 향리에 돌아가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면서 시국을 개탄하였고, 조선조 태종이 그에게 배운 일이 있어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원천석의 시조는 2수가 전하는데 그 중 1수가 회고를 읊은 것이다. “興亡(흥망)이 有數(유수)ᄒᆞ니 滿月臺(만월대)도 秋草(추초)ㅣ로다/五百年(오백년) 王業(왕업)이 牧笛(목적)에 부쳐시니/夕陽(석양)에 지나ᄂᆞᆫ 客(객)이 눈물 계워 ᄒᆞᄃᆞ라.” 이 작품은 길재(吉再)의 “오백년 도읍지를 ……”과 함께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고려의 도읍지를 돌아보며 피리소리라는 애상적인 가락을 통해 자신의 비감한 정감을 잘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