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흥덕왕 때 지금의완도를 중심으로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여 해상왕국을 이룩한 장보고는 중국에 대해서는 견당매물사(遣唐買物使)란 이름의 상인을 보내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회역사란 이름의 무역사절단을 파견하여 중개무역의 이익을 취하였다.
일본측 기록인 ≪속일본후기 續日本後紀≫에 의하면 장보고가 처음 회역사를 보낸 것은 840년(문성왕 2)의 일이며, 이충(李忠)·양원(楊圓) 등 사절단장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당시 회역사의 무역활동은 일본 조정의 묵인 아래 이루어졌다.
장보고는 북구주(北九州)하카타(博多)에 무역출장소를 설치하여 일본관원을 상대로 직접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회역사가 가지고 온 외래품의 인기가 매우 높았으므로 일본인들은 그것을 구입하기 위하여 물품대금을 미리 무역출장소에 납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회역사는 장보고가 죽은 뒤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