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일본은 상해사변(上海事變)을 일으켜 상해를 점령한 뒤 전승기념 및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을 상해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하였다. 이때 비밀항일결사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단원인 윤봉길이 사열대 위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요인을 폭살시켰다.
당시 사상자는 일본군사령관 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 해군중장 노무라(野村吉三郎), 육군중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 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총영사 무라이(村井倉松) 등과 다수의 간부들이었다.
이 중 시라카와는 중상을 입은 뒤 5월 24일 사망하였고 가와바타는 즉사하였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한국독립운동계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일제의 침략을 받아오던 중국인들을 열광시켰고, 그들에게 한국독립운동을 새롭게 인식시켜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후원하게 하였다.
의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윤봉길은 자폭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군에 붙잡혀서 일본 대판(大阪)에 이송되어 12월 18일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윤봉길은 김구(金九)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의 지시로 이 거사를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