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61년(문무왕 1)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흥서사(興瑞寺)라 하였다. 원효가 한산(漢山)의 원효대에서 수행을 하던 어느 날, 서쪽 산기슭에서 3일 동안 서기(瑞氣)가 일어 찾아가보니, 현 약사전 자리에서 약사여래좌상이 솟아나 방광하고 있었으므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000여 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다가, 1686년(숙종 12)에 중창하였다.
1770년(영조 46)에는 왕이 이곳을 친행(親幸)한 뒤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로 고치고 망모(亡母)의 원찰(願刹)로 삼아 약사전을 증축하고 미타전을 신축하였으며, 상궁(尙宮)들이 번갈아 머무르면서 선학(禪學)을 익히도록 허락하였다.
1785년(정조 9) 당시 남북양산성(南北兩山城)의 승도대장(僧都大將)이었던 관선(觀禪)과 법헌(法軒)이 중창하였고, 1867년(고종 4) 뇌응(雷應)이 약사전을 중건하였으며, 1876년 칠성각(七星閣), 1902년에는 나한전(羅漢殿)과 산신각(山神閣)을 창건하였다. 1904년 10월에는 완해(玩海)를 회주(會主)로 하여 만일회를 열었다. 1913년에는 이 모임을 주도하였던 해송(海松) · 뇌응 · 풍곡(豊谷) · 호봉(虎峰) 등 여러 승려들이 새로운 건물을 짓고 대가람(大伽藍)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 절의 중심 건물은 약사전(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인데, 고종 4년(1867)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밖에 1792년(정조 16) 상훈(尙訓) 등이 그린 영산회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2014년 지정),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극락구품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 18세기를 전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경기도 문화재자료, 2001년 지정), 괘불(경기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