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년(경종 3) 의겸(義謙) 등 10명의 화원(畵員) 비구(比丘)가 제작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그림의 크기는 세로 224㎝, 가로 165㎝이다. 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기(畵記)에 ‘흥국사관음전상단후불(興國寺觀音殿上壇後佛)’의 명칭 및 ‘모든 중생(衆生)이 극락국(極樂國)에 태어나 무량수(無量壽)를 친견(親見)하고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원한다’는 제작 동기가 적혀 있다. 따라서 이 불화가 원래 관음전 중앙 벽의 후불화(後佛畵)로 조성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난과 질병을 막아 주는 관음보살은 백의관음, 수월관음, 천수관음 등으로 세분되며, 그 자세는 좌상과 입상으로 나뉜다. 좌상 형식은 수월관음도가 대부분인데, 관음보살과 선재동자(善財童子: 구도(求道)의 보살 이름)로 구성된 형식이 일반적이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입법계품의 한 장면을 도상화한 것으로, 글자 뜻 그대로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이 수월관음도에서는 푸른 물로 둘러싸인 암굴 속에 높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원형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지니고 유희좌(遊戲坐)를 한 정면상이다. 왼손은 무릎에, 오른손은 뒤로 하여 땅을 짚어 몸을 기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좌세는 역시 의겸이 그린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 수월관음도」(1730년 작)와 유사하다.
화면을 채운 관음보살의 발아래, 오른쪽 구석에 선재동자가 허리와 무릎을 약간 굽히고 합장한 자세로 조그맣게 묘사되어 있다. 측면향한 선재동자의 시선은 관음보살을 향하지 않고 있어 이들을 연결하는 유대감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음보살이 정면향일 경우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들 사이에는 수면이 있으며, 관음보살의 배후에는 바위와 두 그루의 대나무,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과 파랑새가 보인다.
고려 말·조선 초에 대두된 정면 좌상의 관음보살이 투명한 사라를 걸친 자태에서 기법상의 우수한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맑은 갈색의 밑바탕 색 위로 밝고 부드러운 적색과 녹색이 주로 사용되었다. 하늘색, 흰색, 그리고 옷 문양과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이 화려하다.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저명한 의겸 일파의 화풍을 대변하는 걸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