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익(權相翊:18631935)은 한말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18271899)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만국공관(萬國公館)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덕곡(德谷)에서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하였다.
‘덕곡’은 그가 경상북도 봉화군 유곡(酉谷) 근처 사동(砂洞)에 살고 있을 때, 서쪽 기곡(基谷)에 문인들이 힘을 모아 모사(茅舍)를 지어주었는데, 이 곳의 지명을 ‘덕곡’으로 바꾸고 문인을 가르치는 곳으로 삼았다.
『덕곡답문록』은 이 곳에서 문인들과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그의 문집 『성재집』이 간행된 덕곡정사(德谷精舍)는 곧 문인들이 지어준 모사를 말하는 것이다.
석판본.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9년 쓴 이탁(李鐸)과 김철희(金哲熙)의 서문이 있다. 1960년에 간행되었으며, 내지에 정오표가 부기되어 있다.
전체 내용은 성재(省齋) 권상익과 제자들이 평소 문답한 말을 기록한 것으로, 정자(程子)에게 『유서(遺書)』가 있고, 사씨(謝氏)에게 『어록(語錄)』이 있고, 주자(朱子)에게 『어류(語類)』가 있는 것과 같다.
전체 구성은 상편(上篇)과 하편(下篇)으로 되어 있고, 서두에는 이탁(李鐸)과 김철희(金哲熙)의 서문이 있다.
상편의 ① 「사문취정록(師門就正錄)」은 1908년에 권욱연(權頊淵)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형상(形上)과 형하(形下)의 구별‚ 우환에 대처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② 「관감록(觀感錄)」은 권상익의 행적 및 교유 등을 서술한 것으로서 이건창(李建昌)과 전우(田愚)와의 일화가 확인된다.
③ 「사동왕배록(砂洞往拜錄)」은 김용호(金龍鎬)가 1927년에 권상익의 사동(砂洞) 집으로 찾아갔을 때 보고 들었던 그의 행동과 대화를 정리한 것으로 상제(喪制)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④ 「용학기문(庸學記問)」은 1918년에 김극원(金克源)이 이기설(理氣說)을 중심으로 권상익과 문답한 것이다.
⑤ 「덕곡예설문답(德谷禮說問答)」은 1922년에 변호달(邊鎬達)이 입사(立祠)·묘제(廟制)·신주(神主)·반부(班祔)·종통(宗統)·배례(拜禮)·관례(冠禮)·혼인례(婚姻禮)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⑥ 「기문록(記聞錄)」은 1923년 권노섭(權魯燮)이 학문방법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하편의 ① 「예의문답(禮儀問答)」은 1922년에 권노섭이 사당(祠堂)·침묘(寢廟)·사대봉사(四代奉祀)·신도(神道)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② 「정재기문(貞齋記聞)」은 1923년에 김정수(金正洙)가 위학지방(爲學之方)·구방심(求放心)·무극태극(無極太極)·육학(陸學)·주일무적(主一無適)·궁격지방(窮格之方)·도기지별(道器之別)·탐정지설(耽靜之說)·허형(許衡)·사상견례(士相見禮)·관복(冠服)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③ 「과정문답(過庭問答)」은 1912년에 아들 권동환(權東煥)이 권상익에게서 자신의 광망지설(狂妄之說)을 고쳐 나갈 방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④ 「덕곡서당기(德谷書堂記)」는 1960년에 김철희가 당시 권상익이 후학을 가르치던 덕곡서당에 담긴 ‘덕’의 의미와 책을 펴내는 의의를 적은 것이다.
19세기 후반 청년기를 경험했던 영남 유학자가 전통을 계승하는 양상을 이해하고, 일제시기 근대화과정 속에서 유학의 초상(肖像)과 사회적 역할을 살펴보는데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