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주자의 제자 이방자(李方子)가 편찬한 『주자연보(朱子年譜)』와 명나라 대선(戴銑)이 편찬한 『주자실기(朱子實紀)』를 하나로 통합한 주자의 전기(傳記)로, 『연보』와 『실기』를 상호 고정(考訂)하여 중복된 부분은 산삭(刪削)하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고 누락된 부분은 추보(追補)하였다.
이 책에는 편자의 서문과 발문이 없지만 송시열의 『송자대전(宋子大全)』에 있는 연보를 보면, 1679년(숙종 5) 송시열의 나이 73세에 『주자연보』와 『주자실기』를 한 책으로 합치고 ‘문공선생기보통편(文公先生紀譜通編)’이라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기록에 근거해서 보면, 본서는 송시열이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송시열은 1679년(숙종 5) 거제도로 유배지를 옮기는데 이때 『주자어류』를 교감하고 산삭한 『주자어류소분(朱子語類小分)』을 완성하고 동시에 『기보통편』을 편찬하였다. 그런데 『기보통편』의 편찬은 1660년(현종 1)에 이미 초간본이 존재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이때 완성된 것이다. 『기보통편』의 편찬에는 나중에 절교하게 되는 윤증(尹拯, 1629∼1714)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송시열의 제자 권상하(權尙夏, 1641∼1721)가 주축이 되어 참여하였다. 『기보통편』의 구성을 보면, 먼저 맨 앞에는 「문공선생기보통편목록(文公先生紀譜通編目錄)」이 있고, 그 뒤로 「연보서(年譜序)」(왕중로(汪仲魯)‚ 「연보중간서(年譜重刊序)」(주원정(朱原貞)‚ 주담(朱湛)‚ 손사제(孫思齊), 1431년)‚ 「실기서(實紀序)」(대선(戴銑)‚ 1506년)‚ 「실기범례(實紀凡例)」(8조)‚ 「각실기후서(刻實紀後序)」(왕유(汪愈))‚ 「각실기서(刻實紀序)」(이몽양(李夢陽)‚ 1513년)가 실려 있다. 그 뒤에 「도통원류(道統源流)」로 시작하는 본문 6권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주자실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자연보』에만 있는 내용은 「진상(眞像)」, 「영묘도(塋墓圖)」, 「운곡서원기(雲谷書院記)」 등 일부분이다. 나머지는 『주자실기』에만 있거나 두 책에 모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두 군데 모두 실려 있는 경우 「목록」에서 ‘기보(紀譜)’로 표시하고 있다. 「행장(行狀)」 부분에는 ‘절록퇴계이선생집주(節錄退溪李先生輯註)’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송시열은 퇴계의 선행연구도 참조하여 『기보통편』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기보통편』은 송시열이 도통(道統)의 관점에서 절대화했던 주자의 위상과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저서로, 이후 노론(老論) 계통의 주자학 연구에 기본적인 공구서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