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는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이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시를 뽑아서 천문문(天文門), 지리문(地理門), 인사문(人事門)으로 구분한 후에 주해(註解)를 달아 간행한 시선집(詩選集)이다.
목판본으로 3권 1책이다. 책의 크기는 27.8×17㎝이고, 반곽의 크기는 18.5×12.5㎝이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계선이 있으며, 반엽(半葉)의 글자는 9행 20자, 주쌍행(註雙行)이다. 판심의 상하에 대흑구(大黑口)가 있고, 어미는 하향흑어미(下向黑魚尾)에 간혹 일엽화문어미(一葉花紋魚尾)가 혼입되어 있다. 1445년(세종 27) 안평대군이 쓴 서문과, 1446년(세종 28) 신숙주(申叔舟)가 쓴 서문이 있다(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이 책은 안평대군이 송나라 반산(半山)왕안석의 시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문(門)을 나누어 엮은 시선집이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아들로, 이름은 용(瑢)이고 호는 비해당(匪懈堂)·낭간거사(琅玕居士)·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장소(章昭)이다. 시·서·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로 칭해졌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대인의 명망을 받았다. 특히 그는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칭송되었으며, 1450년(세종 32) 주조한 경오자 동활자는 안평대군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되었다. 그러나 세조에 의해 사사된 뒤 바로 녹여 을해자를 주조하였기 때문에 전하는 인본은 극히 드물다.
안평대군은 문예에 있어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특히 시문 방면에서 매우 활발하였는데, 여러 문사와 자주 시회(詩會)를 가지는 것은 물론, 스스로 『비해당집(匪懈堂集)』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유명한 시를 모아 주해하여 책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는데, 1443년(세종 25)의 『두보시집(杜甫詩集)』, 1445년(세종 27) 『향산삼체법(香山三體法)』, 1447년(세종 29) 『완릉매선생시선(宛陵梅先生詩選)』, 『산곡정수(山谷精粹)』등이 대표적이다. 안평대군은 중국의 시인들 가운데서도 왕안석의 시를 특히 선호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1447년(세종 29)의 『당송팔가시선(唐宋八家詩選)』 10권과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당송팔가시선』에서는 왕안석의 시가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비해당선반산정화』에 이르러서는 왕안석의 시만을 대상으로 그 정수를 뽑아 엮었다. 이 책의 권수에 정통(正統) 을축년(1445년, 세종 27) 12월 19일, 안평대군이 직접 쓴 서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왕안석의 시를 좋아하여 7∼8년간 감상하였는데, 이 시가 세상에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여 그 정화(精華)를 뽑아 문을 나누고 류(類)를 취하여 여기에 주해를 더한 후에 ‘반산정화(半山精華)’라고 명명한다고 하였다.
『비해당선반산정화』의 구성은 권수에 안평대군의 자서(自序)인 ‘반산정화서(半山精華序)’가 있고, 그 말미에 ‘정통을축납월십구일 청지서우비해당지매죽헌(正統乙丑臘月十九日 淸之書于匪懈堂之梅竹軒)’이라는 1445년(세종 27)의 지문이 있다. 다음으로 정통 병인년(1446년, 세종 28) 3월에 쓴 신숙주(申叔舟, 1471∼1475)의 서문이 있다. 본문은 천문문, 지리문, 인사문으로 나뉘어 있다.
『비해당선반산정화』는 개인 소장본 일부와 동국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국대 도서관본은 목판본으로 간행된 권1∼권3의 영본(零本) 1책이고, 성균관대 존경각본은 목판본으로 간행된 6권 2책의 완질본이다.
이 책은 안평대군 이용의 왕안석 시문에 대한 선호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