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십삼경(十三經) 가운데 『논어(論語)』, 『맹자(孟子)』, 『예기(禮記)』 가운데 편(篇)들인 「대학」과 「중용」 등을 선택하고 철학적 관점으로 주석하여 새롭게 표창(表彰)한 경전이다.
기존에 성립되어 있었던 유학의 이념을 담고 있는 ‘십삼경’ 가운데, 『논어』와 『맹자』및 『예기』의 편들인 「대학」과 「중용」 등을 선택하여, 성리학이 제시하는 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주석해서 성립된 경전들이다. 사서(四書)라고 불리며, 이를 정립한 인물은 주자(朱子)로 존숭되는 주희(朱熹, 1130∼1200)이다. 주자는 『논어』와 『맹자』에 대한 기존의 방대한 주석을 정리하여 성리학의 철학적 핵심인 ‘리기론(理氣論)’의 관점에 입각해서 집주(集註) 형식으로 새롭게 경전을 구성했다. 이는 성리학의 원류 가운데 하나가 되는 이정(二程)에 의해서 초안이 작성된 것이며, 후일 그들을 사숙한 주자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사서의 명칭은 주자에 의하여 확립된 것이고, 집주는 주자에 의해서 창안된 방식으로, 고유명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학』과 『중용』은 『예기』의 한 편명들이었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취지가 성리학적 이념에 부합하고, 간이(簡易)하지만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사서집주'라고 하여, 『대학』과 『중용』도 집주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주 형식이 아니라 장구(章句)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장구 형식은 기존의 『대학』과 『중용』의 내용을 새롭게 여러 장들로 세분하여, 성리학에 입각한 주석을 가미하여 새로운 체제와 내용을 가진 것으로 창작한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서집주'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가 보다 정확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원대(元代) 인종(仁宗) 황경(皇慶) 3년(1313)부터 『사서』를 국가고시의 지정서로 쓰기 시작하였고, 명대(明代)와 청대(淸代)에도 그것이 계속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사서집주』가 유입되었다.
성리학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근대 이전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사서집주』는 지식인과 교양인들의 필독서로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는 말이 전통 문화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