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도 ()

유교
문헌
1904년 명나라 장응등이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에 해설을 붙여 엮은 도설서. 유학서.
이칭
이칭
공자성적도, 공부자성적도, 성적도본, 선성궐리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04년 명나라 장응등이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에 해설을 붙여 엮은 도설서. 유학서.
개설

1592년(선조 25) 명나라 장응등(張應登)이 공자(孔子)의 묘가 있는 궐리(闕里)에 있던 ‘성적도’를 증보하여 112도(圖)의 도판으로 만들었는데, 그 탑본의 108도를 1904년(광무 8) 공재헌 등이 다시 편집하고 서문을 붙여 간행한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공자의 76세손인 공재헌(孔在憲)이 1901년(광무 5) 가을에 중국에 들어가 영해부(甯海府)에서 공소겸가(孔昭謙家)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여성부(呂聖符, 呂兆祥)의 ‘성적도’ 108면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를 자기가 소장할 것이 아니라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여기고 서를 쓴 두 사람과 더불어 간행하게 되었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으로 건(乾)·곤(坤) 2책으로 간행되었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규격은 37.8×27.7cm이다.

내용

『성적도(聖蹟圖)』는 공자의 평생의 행적을 그린 그림을 설명과 함께 목판에 새겨 간행한 공자 평생도 성격의 책이다. 건곤(乾坤) 2책으로 간행되었는데, 서문에서 제54도까지가 건책, 제55도부터 제105도가 곤책에 해당한다. 건책은 머리에 1902년(광무 6) 은진(恩津)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1904년(광무 8) 양주(楊州) 조병식(趙秉式, 1832∼1907)이 쓴 ‘성적도서(聖蹟圖序)’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공자의 76세손인 공재헌이 1901년(광무 5) 가을에 중국 영해부에서 공소겸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여성부의 ‘성적도’ 108면을 가지고 돌아와 널리 보급하기 위해 송병선, 조병식과 함께 간행했다는 설명이 있어 이 책의 간행 경위를 알 수 있다.

서문 다음에 ‘성적도’ 108면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제1면은 큰 글자의 전서로 쓰여진 ‘성적지도(聖蹟之圖)’이고, 제2면과 제3면은 1592년(선조 25) 장응등이 쓴 ‘성도전기(聖圖殿記)’이다. ‘성도전기’를 통해 성적도의 초기 연혁을 알 수 있는데, 공자의 묘가 있는 궐리에 원래 ‘성적도’란 것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서 순안어사(巡按御史) 하출광(何出光)이 이를 보고 주변 군읍에서 4천 민(緡)의 돈을 모아 공묘(孔廟)의 뒤편에 성도전(聖圖殿)을 짓고 성적도를 돌에 새겨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간행의 실무는 당시 곡부(曲阜)의 지현(知縣)이던 공자 61대손 공홍복(孔弘復)이 맡았고‚ 그 후 1년이 경과한 1592년(선조 25)에 장응등이 궐리에 파견되어 석전(釋奠)을 올려 작업이 완성되었음을 고하였다. 이 때 원래의 성적도에 빠져 있는 공자의 행적을 보완하여 112도로 증정하고 이를 성도전 제단 위에 놓아 탑본을 뜨거나 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제4면은 공자의 초상을 그린 ‘선성소상(先聖小像)’이다. 제5면부터 총 104면의 그림은 공자의 출생에서 사후 사당에 안치되기까지의 주요 사건을 제목과 설명을 붙여 판각한 것이다. 제5면 ‘니산치수(尼山致禱)’는 니구산(尼丘山)에서 공자의 어머니 안씨(顔氏)가 기도를 올려 그 이듬해에 공자가 태어났다는 설명이 있다. 제6면의 ‘기린옥서(麒麟玉書)’는 공자가 태어나기 전에 기린이 나타나 쇠약한 주를 이어 소왕(素王)이 될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내용의 옥서(玉書)를 토해놓고 갔다는 내용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이후 주요 사건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설명은 노 애공(魯 哀公) 17년 공자가 죽자 애공은 묘를 세우고 묘를 지킬 100호(戶)를 두었다는 ‘입묘치호(立廟置戶)’까지 있고 이후의 마지막 2면은 제목과 설명이 생략되었다.

『성적도』는 ‘성적도’라는 제목 외에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 ‘성적도본(聖蹟圖本)’, ‘선성궐리도(先聖闕里圖)’ 등 다양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 또 이들은 내용, 체제, 규모, 증보의 상태, 판본의 종류 등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다. 특히 『공부자성적도속수오륜행실(孔夫子聖蹟圖續修五倫行實)』과 같이 『속수오륜행실도』와 합본으로 간행된 본은 신연활자로 간행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모두 『성적도』의 계열로 범주화할 수 있으며, 서울대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 많은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본인 ‘규중(奎中) 390‚ 392‚ 393‚ 394‚ 395‚ 396‚ 397‚ 2406‚ 2407’은 동일본이나 결락 등 전존 상태에 차이가 있다.

의의와 평가

『성적도』는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간행되었고, 현재 여러 계통과 판본이 남아 있다. 이 판본은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다른 계통의 성적도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여러 문헌에 있는 공자의 기록들을 발췌하여 제작되었다. 글씨를 잘 모르는 일반 백성들에게 유교를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불교의 탱화나 도교의 신선도처럼 유교의 사상을 그림으로 전달하려는 대중화의 산물인 것이다. 그림을 위주로 하고 간략한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유교의 대중화를 구현하고, 동시에 미학적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공자성적도: 그림으로 보는 공자의 일생』 (성균관대학교 박물관편,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9)
『공자성적도: 고판화로 보는 공자의 일생』 (김기주, 예문서원, 2003)
규장각 한국학연구원(kyujanggak.snu.ac.kr)
국립중앙도서관(www.dibrary.net)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