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암(幻庵) 혼수(混修, 1320∼1392)에게『능엄경(楞嚴經)』을 가르친 식영암 선사의 문집이다. 현재는 문집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사경(高麗寫經)』의 주석에 의하면 식영암은 2대에 걸쳐 3명의 승려를 배출한 집안 출신이다. 성은 양(梁)씨이고 출가하여 연감(淵鑑)이라는 법명을 사용했으며 전라남도 강진의 월남사(月南寺) 장로를 지냈다.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그의 문도들이 식영암을 기리고자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팡이를 의인한 가전체 설화 『정시자전(丁侍者傳)』을 비롯하여 그가 쓴 여러 글들을 모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식영암의 글 11편이『동문선』에「설(說)」,「전(箋)」,「소(疏)」,「기(記)」등 여러 분야에 걸쳐 실려 있다.
선원사 주지로 있던 식영암은 이곳에 머물며 사대부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 도속을 교화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환암혼수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에 경륜이 깊은 식영 연감의 법회에 참석하여 『능엄경』의 진수를 터득하고 그에 따라 수행하였다. 1324년 이래선원사 주지로 주석한 식영 연감은 몇 해 전에 소실된 비로전(毘盧殿)을 중건한 뒤 제자인 전인(全忍)에게 돈을 주어 송나라에 가서 비로전의 단청을 위한 채색재료를 구해오도록 하였다. 1325년에 비로전을 단청하고 그 동편 벽과 서편 벽에 40개 신중상을 그려 넣었다. 단청을 마치고나서 식영암은 몸소「선원사비로전단청기(禪源寺毘盧殿丹靑記)」를 지었다. 이것은『동문선』권65에 수록되어 있다.식영암은 또한 일찍이 선원사의 중건을 발원하는 소(疏)를 지어 올려 선원사를 크게 중수하기도 하였다. 이색I李穡)이 쓴 행촌(杏村)이암(李嵓, 1297-1364)의 비문에는 이암이 선원사의 식영암과 함께 방외(方外)의 도반이 되어 절의 경내에 건물을 짓고 편액을 해운(海雲)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식영암이 지은 이들 글들은 모두 『식영암집(息影菴集)』에 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식영암집』은 고려 후기 불자와 유자의 사상적 교유의 흔적을 담고 있는 서적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또한, 가전체 설화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한편,『동문선』에 남아 있는「설」․「전」․「소」․「기」 등의 글(11편)에서 확인되듯이 여러 분야에 걸쳐 관심을 지니고 한 시대의 문화계를 풍미하며 살았던 선사의 살림살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