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진주에서 발행된 『시단』과 더불어 지방 문예 운동의 전위로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으나, 발행을 허가받지 못해 임시호(臨時號)를 낸 것이 창간호 구실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시가’, ‘시론’, ‘신시’, ‘동요’, ‘수필’, ‘감상’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싣고 있는데, 이는 1920년대의 다른 시 전문지가 시와 시론 중심으로 편집된 것과는 구별된다.
『신시단』은 국판 54쪽으로 지령(誌齡)은 창간호에 그쳤다. 편집 겸 발행인은 신명균(申明均)이고, 발행소는 진주(晋州)의 ‘신시단사’였다. 동인으로는 엄흥섭(嚴興燮)ㆍ김병호(金炳昊)ㆍ정창원(鄭昌元)ㆍ소용수(蘇瑢叟) 등이 있다.
『신시단』은 비록 창간호에 머물었지만, 월간 시지(詩誌)를 표방하고 필진이 전국에 미친 점, 시인 작품을 발굴하고자 했던 점, 문학의 해외교류를 표방한 점이 특징적이다. 문예지 가운데 처음으로 일제에 의해 창간호가 압수되었음은 물론 검열에 의해 전문이 삭제될 때는 제목과 필자를 밝히고 부분 삭제일 때는 남은 부분을 그대로 실음으로써 독자에게 검열의 형편을 알려 주어 저항감을 돋웠다. 실린 시의 내용은 대체로 1920년대 전반의 병적 감상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순수 서정과 시국에 대한 비애와 절망의 두 갈래로 나타났다.
『신시단』은 지방에서 창간된 시 전문 동인지로 1920년대 지방 문단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해외 문학을 소개한 전문 잡지라는 의의가 있다.